[톨비밀레]한번 숨결을 거둔 믿음은 두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여명 22-11-21 14:40 22

G21 이후의 시점. HL BL 마음에 드는 쪽으로 읽어주세요. 우리집 밀레시안과 톨비쉬의 이야기. 

 

***

 

! 저 톨비쉬 사랑합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2004, 소지섭 주연)

 

! 캐붕 날조 아무튼 주의. 밀레시안이 톨비쉬에게 다소 차갑습니다. 꿈속에서의 대화... 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먹지 않아도, 마시지 않아도, 잠들지 않아도 죽지 않는 불사의 몸, 늙지 않고 꺾이지도 않는 불로의 형상.

 

인간이면서 인간이 아닌 밀레시안. 그렇기에 ■■■■■는 일부러 이 세상의 필멸자인 다난처럼 잠을 청한다. 흉내라도 내지 않으면, 영원한 이방인은 미쳐버릴 것 같았다.

 

무겁지 않은 눈꺼풀을 억지로 덮으며 숨을 가다듬는다. 명상, 좀 더 세분화해서 말하자면 메디테이션을 하듯이. 호흡과 흐름에 자신을 맡기고 의식을 날려버린 밀레시안은 이내 어떠한 꿈을 꾸었다.

 

온몸이 시리다 못해 자칫하면 내면의 모든 것마저 정결함에 동화되어 맑아질 것 같은 성역. 푸르고 깨끗한 물이 흐르고 허하지 않은 생명은 자라지 않는 장소를 보고 느끼며 이내 그는 중얼거린다.

 

, 난 이 곳을 본 적 있어. 그날이었지. ■■■■■는 괜스레 제 가슴과 명치께를 쓰다듬는다. 모두의 곁에서, 그리고 그의 앞에서 대검이 자신의 몸을 꿰뚫던 날의 기억. 썩 유쾌하지 않은 경험을 떠올린 ■■■■■는 쓴 웃음을 짓는다.

 

■■■■■는 감정을 드러내길 싫어한다. 정확히는, 싫어졌다가 맞았다. 번거롭기도 하지만 사사로운 감정에 약점 잡히는 것도 싫다. 그렇기에 타인에게 정을 주는 것을 경계하고 두려워했다. 혹여나 약해질까 봐. 그로 인해 혼란이 올까 봐. 제가 구하지 못한 이들이 있었기에 더더욱.

 

하지만 삶과 운명만큼 감정 또한 원하는 대로 돌아가질 않는다. 처음으로 등을 맞대고 기대고 싶다 생각한 이들이 생겼다. 특히 함정에 빠진 자신을 덮친 진득한 부정으로부터 들려온 그의 목소리가 저 먼치에서 들려왔을 때. 굳게 잠갔던 마음 한편에 있던 믿음을 내주고 말았다. 지금은 그 일이 자신의 최대 실수처럼 남아버리고 말았지만.

 

믿었기에 당한 일은 그 어떤 때보다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해야 했는지는, 머리로는 이해하는 ■■■■■지만 마음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한번 깨진 마음을 이어 붙였더니 이번에는 가루를 모으기 힘들 정도로 잘게잘게 무너지고 말았다. , 누군가에게 정을 준다는 건 역시 괴롭고 힘든 일이야. 가슴을 옭아매는 느낌에 눈을 한번 질끈 감고 만다.

 

그러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 밀레시안 씨."

 

더 이상 들을 기회 따위 없을 익숙한 음성이 두 귀에 울린다. 설마, 그가 있을 리가 없지. 이곳은 꿈속인데.

 

"..."

 

"어디 아프십니까? 표정이 좋지 않군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저주라도 걸린 건가. ■■■■■는 일부러 인상을 써가며 감은 눈에 힘을 주었다. 무시를 해도, 몇번이고 목소리가 울린다. 그럴수록 주름 팰 만큼 미간을 찡그린다. 어차피 그깟 주름이 생긴다 해도 육체는 갈아탈 수 있지 않은가.

 

제발, 부탁이야. 꿈이라도 편히 꾸게 해줘.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목소리에 기도하듯 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저에게 들리던 소리가 차츰 멎어 들다가 완전히 그치자 ■■■■■는 천천히 감은 눈을 떴다.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아 안심하는 한편 묘한 불편함과 불안감이 느껴졌다. 꿈속에서 환청이라니, 너무하지 않은가.

 

서 있던 자리에서 한 발짝 내딛자 환한 빛무리가 제 시야를 가렸다. 빛을 가리고자 팔로 제 눈을 막으니 이번에는 펄럭이는 날갯소리가 났다.

 

환한 빛이 잦아들자 눈을 가리던 팔을 내려놓고 다시 앞을 바라보니 스쿠압틴에서 본 깃털과 같은 것이 흘러내렸다. 심지어 그때 느낀 익숙한 신성력도.

 

,

 

빛무리가 사라지니 그 속에서 결이 살아있는 곱슬곱슬한 윤택한 금발과 진중함과 자애를 한껏 담은 듯한, 존재 자체로 신이 직접 빚은 광휘와도 같은 푸른빛 눈동자가 보였다. 그날 이후로 본 적 없는 얼굴이 나타났다.

 

"드디어 이쪽을 봐주시는 겁니까."

 

"... 오랜만, 이네."

 

할 말 자체가 떠오르지 않았다. 무얼 말해야 하지? 분명 호의가 있는 자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는 게 정상 아니던가. 적어도 제가 읽거나 본 연애소설이며 시며 희곡이며 그렇게 표현했던 것 같은데.

 

두근거리긴 커녕, 쥐어짜는 괴로움에 제 왼쪽 가슴 부분을 움켜쥔다.

 

"왜 나타난 거지?"

 

"당신이 걱정 되었습니다."

 

"그럴 필요까진 없었을 텐데."

 

애써 그를 외면하며 숨을 가다듬는다. 미안 알터, 아벨린, 카즈윈, 피네, 르웰린. 나는 그 이후로 톨비쉬가 낯설어. ■■■■■는 한때 함께 했던 이들의 이름을 속으로 읊조리며 짧게 자신의 죄악을 고한다.

 

"밀레시안 씨."

 

"제가 당신을 -- 아프게 했습니까?"

 

, 라니. 나는 또가 아니야. 계속 아파. 멋대로 아프게 해놓고 멋대로 도움을 주고 너는 정말 나쁜 자식이야. 내뱉고 싶은 말을 일부러 씹어 삼키며 ■■■■■는 톨비쉬를 바라본다.

 

"자책이라도 하고 싶은 거야?"

 

"그런 게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러면 왜 이런 꿈속까지 나타난 거지?"

 

"실체는 여기에 없으니, 이렇게라도 당신께 인사하고 싶었습니다."

 

"너와 내가... 사적으로 인사를 주고, 받을 만큼의 사이가 아니잖아."

 

밀레시안을 바라본다. 그가 제게 매정하게 군다는 것은 알고 있다. 무슨 연유로 그러는 것인지 이해는 하지만 그 당시 자신은 꽤 닳다 못해 무너져 있었지 아니했는가.

 

톨비쉬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을 바로 잡기 위해 모습을 감춘 이후로 밀레시안은 성소에 단 한 번도 오지 않았다. 그는 위급한 경우가 아닌 이상 알반에 대한 자세도 생각 이상으로 이성적으로 대했다. 스쿠압틴에 관해서도 아마 자신이 알터에게 계시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그런데도 별은 지켜볼 때마다 꽁꽁 얼어붙다 못해 그리 서러워하고 슬퍼하는지 알고 싶었다.

 

"밀레시안 씨."

 

"아직 할 말이 더 남아 있어?"

 

"실례가 아니라면, 당신께서 왜 저를 쌀쌀맞게 대하는지, 궁금합니다."

 

직설적인 질문에 ■■■■■는 눈을 크게 떴다. 어째서, 냐고. 대답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영원히 숨기며 혼자 끙끙 앓느니 미움을 받게 되더라 해도 이번만큼은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이러면 안 된다는 거, 알고는 있는데... 나 역시 너를 원망해."

 

"네가 나를 원망한다 했을 때 나도 너에게 당한 게 아파, 지금까지. 네가 도와준 거나 내가 해야하는 거랑 별개로 난 널... 점점 믿기 힘들어져. 어쩌면 좋지."

 

덤덤하게 남은 마음마저 체념하고 스스로 부러뜨린 ■■■■■가 공허한 눈으로 앞을 응시했다. 톨비쉬는 상대의 잔잔한 눈빛이 실시간으로 사라지자 무언가가 일그러져 버렸다는 걸 깨달음과 동시에 그의 모습이 흩어지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꿈이, 무너지고 있었다.

 

 

 

 

 

ㅡ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잠에서 깬 ■■■■■는 축축해진 눈가를 닦으며 몸을 일으켰다. 왜 울었더라. 분명 꿈을 꾼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무슨 꿈이었더라? 가슴이 저린 느낌에 인상을 찡그리고는 자리를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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