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너운/드림]001
여명 23-03-14 17:10 46

 천계의 영웅이자 세상을 구하는 연단된 칼날이라 불린 자는 아주 차가운 성정을 지닌 이였다. 마치 한겨울날 찬 물에 담궈둔 날붙이처럼 시리고 날카로웠다. 타인에게 흥미를 보이지 않는 그가 유이하게 신경 쓰는 것 중 하나는 제 연인이었다. 그의 연인은, 천계의 대장군이었다. 군의 총사령관이라는 것은 그만큼 짊어져야 할 책무와 의무, 목숨이 수도 없이 많다는 의미기도 했다. 그렇기에 그는 항상 바빴고, 해야 할 일 또한 쉬이 줄어들지 않았다. 칼날 역시 바빴지만, 오랜만에 확보한 휴식일정에도 불구하고 오롯이 제 연인과 보낼 수 없다는 것은 얼어붙은 얼음을 단숨에 녹이기 충분한 불만이었다.

 

 "라이오닐."

 언제까지 그 지겨운 서류를 손에 들고 있을 생각이니? 그의 물음에도 라이오닐이라는 남자는, 정확히 말하자면 칼날의 소중한 연인은 처리해야 할 일이 많다는 이유 하나로 좀처럼 집에서도 일을 놓지 못했다. 전에는 이러지 않았었는데. 칼날은 조용히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하지만 몇시간이 지나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줄곧 인내하던 칼날은 자리에서 일어나 라이오닐의 손에서 서류를 빼앗듯이 가져갔다.

 

 "좀 쉬어."

 "... 제너스님, 돌려주십시오."

 "도대체 이게 며칠째야? 너, 집에 와도 서류만 보고 있는 건 알고 있니? 라이오닐, 뭐때문에 그리 바쁜데. 분명 지난번에 나한테 당분간 좀 여유로울 거라 하지 않았던가? 조금 네 자신을 챙기면 덧나?"

 "... 사정이, 있습니다."

 "말해보렴."

 "죄송합니다. 말씀드리기 어려운 내용입니다."

 "흐음."

 그래? 알았어. 의외로 빠르게 수긍한 칼날은, 뺏어서 미안하다며 그에게 서류를 돌려주었다. 라이오닐은 그런 연인의 덤덤한 모습에도 양심의 가책이 들어 가슴을 움켜쥐다 일에 집중할 뿐이었다. 시간이 좀 지나, 칼날은 그가 일을 하는 책상 옆에 가벼운 식사거리를 두고 먹을 때라도 좀 쉬라며 다독였다. 그 말에 라이오닐은 하던 일을 멈추고 그가 챙겨온 음식을 입에 넣으며 칼날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그는 무표정이었다. 화가 났다 하기엔 고요했으며 슬프다 하기엔 잠잠한, 평온한 얼굴이 오히려 무언가를 내포한 것만 같았다.

 

 "라이오닐."

 "... 네."

 "나 내일 떠나."

 "... 어디로 떠나시는 겁니까?"

 "말하기 어려운 내용인걸."

 그는 상대의 말을 돌려주듯, 애매모호한 답만 내뱉었다.

 

 "언제쯤 돌아오실 예정이십니까?"

 "글쎄."

 당분간은 돌아오지 못하겠지. 라이오닐은 떠올렸다. 이렇게 멀리 떨어지기 전에 항상 그가 제 이마에 가벼운 입맞춤을 해주었다는 것을. 하지만 오늘은 입맞춤도, 웃음도 없었다.

 

 "... 되도록, 빠르게 돌아와주십시오."

 "글쎄, 빨리 와도 봐주는 사람이 없는데 굳이 일찍 돌아갈 필요는 없지. 잘 자."

 칼날은 자신이 화났음을 내포하는 말 한 마디와 함께 먼저 자리를 피했다. 그러자 라이오닐은 무언가 잘못됐다는 듯 급하게 그를 쫓아가 옷깃을 잡았다.

 

 "... 제가, 신경쓰지 못해서 화가 나셨습니까?"

 "잘 아네."

 "죄송합니다 제너스님. 전 그저..."

 "그저?"

 "제너스님과 하루라도 더 쉬고 싶어서 미리 일을 처리하는 중이었을뿐입니다. 말씀 제대로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

 "... 제너스님?"

 "라이오닐은, 항상 나랑 관련된 중요한 걸 늦게 말해. 다른 것들은 미리 말해주는데."

 혹시 내가 믿기 힘든 사람이었니? 조금은 슬픈듯한 시선을 보내며 칼날은 연인을 바라보았다. 평소같으면 짓지 않을 표정을 한 그의 모습에 라이오닐은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에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들었으나 여전히 그의 얼굴에 슬픔이 묻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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